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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편수 go 첫회보기 작품용량 899.59 Kbytes

      최근등록일2021.04.12 00:06| 연재시작일2020.10.02

      조회276,363|추천6,971|선작4,104|평점비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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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을 거슬러 온 구원자
      yyje 추천 3/2021.02.26
      리뷰는 현재까지 나온 챕터 내용에 한해서 작성되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또한 독자의 해석이 작가님, 역자님의 의도와 빗나갈 수 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뱀의 독, venenum>에 대한 독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며, '구원 서사'에 편애가 심한 편입니다.

      참고 BGM : Splendid - 개미, 이건영

      ━━━━━━⊱⋆⊰━━━━━━


      톰에게 헤르미온느는 '구원자'나 다름없다.
      아니, '구원자'일 것이다.
      그것도 아님 '구원자'던가.

      물론 톰 본인은 인정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나는 헤르미온느가 그의 구원자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상이 버린 주인공, 그런 그에게 유일하게 내밀어진 손. 이것은 구원 서사의 너무 뻔한 클리셰다.

      글쎄, 하지만 절박했던 그의 앞에서 어느 누가 과연 위와 같은 발언을 대담하게 할 수 있을까.

      톰과 무리를 이루는 이들은 -실상은 일방적인 주종 관계지만- 덤블도어를 눈엣가시처럼 여긴다. 자신들이 벌인 모든 일에 촉각을 세워 그들을 예의주시하는 존재가 어찌 반가울 수 있을까?

      하지만 유독 톰은 그에 대한 적개심이 남다른 편이다. 덤블도어의 명망 자체를 부정하며 방관자라 칭하고, 어쩔 때는 뼛속 깊은 곳에 숨겨놓은 그에 대한 분노를 내비치기도 한다.

      그 이유는 헤르미온느와 대화에서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덤블도어가 그를 구원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아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방치했고, 꺼내주지 않았다. 덤블도어는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이 이유들은 톰의 노여움을 사기에 지나침이 없었다. (Ch 11 -번역본 28화 참조)

      어쩌면 톰은 어렸을 적부터 자신을 고아원에서 구원해 줄 구원자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여느 아이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사탄의 자식'이라는 말과 멸시뿐이었다.

      분노를 하루하루 몸에 새기며 고아원에서 벗어날 날을 고대했던 어느 날, 톰에게 '호그와트' 존재에 대해 알려주는 어떤 남자가 찾아왔다.

      톰은 그 남자가 수렁에 빠진 자신에게 명쾌한 답을 줄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악몽 같은 소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 본인이 경배하는 마법들 속에서 지낼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며.

      하지만 덤블도어는 그에게 어떠한 미련도 남기지 않았다. 톰의 기대에 맞춰 기꺼이 순리를 거스르려 하지 않았다.
      단 한순간도.

      톰이 호그와트에 애착을 가지면 가질수록 덤블도어에 대한 그의 분노는 커져만 갔을거다. 또한 톰은 자신의 마력이 한정없이 엄청나다는 걸 깨달으면 깨달을 수록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세상에대한 복수심도 함께 키웠을 것이다. 자신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 믿으며.

      그래서 톰은 헤르미온느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수치스러워야 하는 건 네랑 네 기숙사지, 내가 아니야'
      (Ch 11 - 번역본 28화 참조)

      그가 생각하는 그리핀도르의 용감함이란 그런 거였을 테다. 고집스럽고, 진실한 친구가 되어주며, 결코 배신하지 않는 용감한 그리핀도르.

      물론 톰은 그리핀도르를 상징하는 위와 같은 자질구레한 미사어구들이 상당히 미련스럽다고 생각할게 분명하다. 톰의 기준에서 용감함은 지나치게 무모하고 감상적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갖추지 않은 덤블도어라면 톰에게 그는 최악 중 최악일 것이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덤블도어와 달랐다. 그녀는 그가 아는 모든 이들과는 결이 달랐다.

      그녀는 톰이 고문 받는 것을 지켜보고는 자기가 더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그녀는 이내 도망쳤지만, 그에게 다시 돌아왔다. 그를 '꺼내주려고'.

      평생 그 누구도 톰의 손을 잡고 고아원을 나서본 적이 없었다. 헤르미온느가 처음이었다. 어쩌면 헤르미온느가 고문당하는 톰을 직접 봤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하는 데에 더 거리낌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두 가지가 있다.

      1. 덤블도어가 톰이 당하는 고문을 직접 봤더라도 그를 과연 구원했을까? 아니. 감히 말하건대, 그는 미성년자인 톰을 다시 고아원에 돌려보냈을 것이다. 방학이 되었기에 보냈을 것이고, 톰이 머글에게 복수를 할까 두려워 지팡이도 빼앗았을 것이다. 그 사실을 직접 보지 않았던 현재와 다를 바 없이, 늘 그렇듯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2. 헤르미온느는 이미 순리를 거슬러 시간을 건너 왔다. 그 자체만으로도 타임라인이 뒤틀려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녀도 분명히 안다. 해리의 번개 모양의 상처가 사라져가는 것을 보며 더는 순리를 거스르면 안된다는 것을.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또 순리를 거스르고 만다. 먼 미래에 자신과 친구들의 목숨줄을 쥐고 구렁텅이로 내 몰 '그'를 구하기 위해서. 이런 무모한 용감함이 모든 걸 망칠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앎에도 헤르미온느는 그를 내버려 두고 올 수가 없었다.

      그렇게 톰은 태어나 처음으로 그녀에게 구원을 받았다. 그녀는 그를 구원했다는 핑계로 그에게 위세를 떨지도 않았다. 그리고 톰의 구원자가 된 헤르미온느는 톰의 '우리'가 된다.

      짐을 챙겨 나오는 고아원에서 자신과 헤르미온느를 한 데에 모아 모욕하는 머글을 보며 톰은 그녀의 손을 잡고 얘기한다. '가자, 그레인저. 얘들은 우리와 달라.'
      (Ch 12 - 번역본 30화 참조)

      톰이 그 누구에게 '우리'라는 표현을 썼던 적이 있었던가? 자신을 보좌하는 슬리데린 떨거지들에게조차 쓰지 않았을 표현이다. 만약 그가 자신 외의 누군가를 '우리'의 정의에 포함해 얘기했다면 그건 단순히 환심을 사려 했음에 틀림없다. 자기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에 꼭 필요한 순혈들을 위해, 그 명목 아래 그들 위에서 군림하기 위해.

      하지만 그녀에게만은 달랐다. (톰은 전혀 공감하지도 않을 테지만) 그녀의 구원이 그가 곧 그녀라는 공식을 만들어 준 계기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공식은 자신만을 사랑하는 톰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될 것이다. 그렇게 톰은 헤르미온느가 곧 그이기에 더욱더 집착하고, 집착할 것이다.

      현시점에서 톰은 이미 호크룩스를 2개나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적당한 때를 기다리며 더 많은 호크룩스를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가 헤르미온느의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그의 위험한 계획이 더 이상 실현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어쩌면 같은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기대한다. 헤르미온느를 이미 '우리'라고 칭한 톰이 그녀의 태생을 알았을 때 그가 꿈꿨던 방향성이 조금은 틀어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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