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베스트

      작품 서평

      홈 > 작품 > 작품서평 >

      연재편수 go 첫회보기 작품용량 4976.6 Kbytes

      최근등록일2020.09.09 15:57| 연재시작일2019.11.07

      조회262,222|추천1,422|선작696|평점비허용

      • twitter
      • facebook
      도널드 트럼프 피하기
      광섬석 추천 0/2020.11.21
      대체역사가 무엇이냐를 따지기엔 독자님들의 수준이 너무 높을 테니 제가 감히 따지진 못 하겠지만, 적어도 대체역사가 '비평'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느냐에 대해선 먼저 언급을 하고자 합니다.

      어떤 작품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크게 4가지 관점을 취하게 되는데, 작품 자체를 따지는 것, 작가를 따지는 것, 독자를 따지는 것, 작품이 쓰여진 시대상을 따지는 것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일반적인 대체역사는 보통 해당 작품을 빚어낸 원류 문화권을 주인공으로 삼게 됩니다. 작가는 엄연히 사람인지라 먹고 살아야 되며,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공감을 사기 쉬운 얘기를 위해선 그 작가가 속한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들려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체역사란 장르 자체가 결국 작가와 독자가 깊숙이 관여된 장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을 보거든 조금은 복잡한 기분을 느낍니다.

      한국어에 기반을 둔 이 작품에 한국이 주인공이라 할 수 없는 점이 아예 없다면 그건 결코 아닙니다. 겉으론 '조지 부시'란 미국 대통령을 내세우며 그 대통령의 행보가 변하는 걸 기반으로 이 글이 전개됩니다만, 결국 그 조지 부시에게 빙의된 알맹이는 한국인이니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글은 대체역사물의 큰 구조에서 아예 벗어났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다만 정석적인 전개에 비하면 변화를 준 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위한 시대상을 알기 위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크게 2가지입니다.

      1.조지 부시 대통령의 여러 가지 실책으로 인해서 쇠락한 미국
      2.미국이 중동에서 국력을 잃는 동안에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형성된 신냉전 구도

      사실 이 두 가지를 말했거든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의 내용을 거진 얘기가 끝난 상태입니다. 결국 저 두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조지 부시에게 주어진 8년의 시간을 빙의된 주인공이 물꼬를 틀어서 바꾸는 내용이니 말입니다.

      좀 식견이 있으신 분들은 이 글의 제목부터가 도널트 트럼프를 노린 것이란 걸 알 수 있으실 테고, 저는 그래서 글이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봤습니다. 내용을 이래저래 언급하는 건 스포일러라 생각하지만, 요약하자면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솔선수범하고, 아주 모범적인 리더가 미국을 이끌며 이로 인해서 한국이 덕을 보는 내용도 포함된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의 초반부 내용은 우리 역사에서 벌어진 여러 참사들을 조지 부시란 대통령이 할 수 있었던 행위로 어떻게든 바꿔놓는 얘기였다면, 후반부 내용은 그렇게 바뀐 내용에 조지 부시가 적응해나가고, 미래인으로서 초인에 가깝던 지위를 내려놓고 인간으로 돌아오는 내용입니다.

      이 점이 제가 극찬하고 싶은 점이자 동시에 이 글의 한계라고 할 수 있는데, 극찬하고자 하는 바는 조지 부시 당시에 벌어진 여러 사건과 일화에 대해서 작가님의 식견과 이에 대한 제안을 읽는 맛이 뛰어났단 겁니다. 대체역사의 클리셰와도 같은 절차를 아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조지 부시에게 주어진 시간은 8년이고, 역사의 물꼬를 바꾸면서 초인이었던 주인공이 인간으로 돌아와서 분투하는 건 뭐라고 할까요. 대다수 삼국지 매체가 제갈량의 죽음에서 끝을 맺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갖고 있습니다.

      다만 이 점은 제가 작가님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란 걸 밝힙니다. 결국 '위대한 미국'을 위해서 조지 부시는 대통령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고, 초인인 것도 포기해야 됩니다. 민주주의란 그런 것이어야 하니깐 말입니다.
      그렇지만 강력했던 주인공이 약해지는 과정을 보는 건 독자로서 마음이 아파지는 면이 있다고 할까요.

      그리고 역사에 벌어졌던 일과 다른 일이 벌어지는 것은 결국 대체역사 장르에서 벗어난 것이 됩니다. 대체역사에서 정치물로 장르가 바뀐단 것인데, 이런 점에서 대체역사를 보아온 독자들에겐 글의 장르가 전환된 것에 적응할 여유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저 개인적으로 '조지 부시'란 외국 대통령이 원래와 달리 성공하는 이 이야기에 꽂힌 건, 결코 제 감성이 풍부하기 때문이 아닐 겁니다. 비록 '조지 부시'는 외국인이지만 그의 실패로 인해서 우리도 실패했다 여기는 것이 있기 때문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일 텝니다. 실제로 21세기는 한국의 대다수 사람들에게 있어서 힘든 시기였고, 미국 역시 쇠락하는 시기였으니 말입니다.
      그렇기에 그 조지 부시의 성공에 공감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님 덕분에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조회수 : 152|추천 0 추천

      코멘트의 코멘트가 있습니다.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