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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편수 go 첫회보기 작품용량 389.93 Kbytes

      최근등록일2020.05.26 21:00| 연재시작일2019.12.14

      조회224,711|추천2,564|선작2,642|평점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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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라도 재밌지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면 더 재밌는 패러디!
      새잡는어부 추천 2/2020.05.23
      ※본 독자는 현재 이 소설의 최신화인 ‘40회’까지 감상을 한후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다소 스포가 포함되어 있을수도 있으니 주의해주십시오.
      ※ 내용이 기니까 요약 해달라는 분은 맨 아래에 [이 소설을 추천하는 대상은.] 만 보셔도 무방합니다.

      주인공이 오니라는 특징을 부각시키며 흘러가는 이야기.

      → 오에산의 두령이자 오니들의 대장인 슈텐도지 酒呑童子는 본래 라이코우를 필두로한 토벌대에 의해 참수 당하는 것으로 삶의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죽어 사라 졌었어야만 했을 슈텐도지가 어떤 연유인지 다시 눈을 뜨게 되었다─가 이 소설의 서두입니다. 자신의 목이 베였던 오에산이 아니라 쿠모토리산 이라는 처음 보는 장소에서 부활하게 된 슈텐도지는, 숯을 팔며 가족들과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던 카마도 탄지로 라는 소년과 마주칩니다. 슈텐도지는 오직 술의 향취만으로 취해 쓰러진 탄지로를 보고 자신이 옛적에 예외적으로 곁에 두고 키웠던 인간 아이를 떠올립니다. 슈텐도지는 탄지로를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포식자의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밭에 쓰러진 탄지로를 근처에 있는 오두막까지 데려다주는 변덕을 부립니다. 보통 사람 이었다면 죽었다 살아난 만큼 내 상식이 이 시대에서도 통하는지에 대해서 정보를 긁어 모으기 위해 움직이거나 아니면 현실감각이 떨어져 멍하니 있거나 하는 등. 열이면 아홉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의문을 가질 것 입니다. 하지만 슈텐도지는 인간이 아니라 오니라 그런 일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현실에 수긍할 것도 없이 태연히 몇날며칠이고 탄지로라는 인물을 관찰하며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 패러디는 반복적으로 인간(탄지로)과 요괴(슈텐도지)의 관점차를 둘다 보여주며 이야기를 끌어나아가는 부류의 소설입니다. 인간이라 해도 심성이 착하면 착했지 결코 나쁘지는 않은 탄지로가 인간 전체의 감상을 감히 대변할 수는 없지만, 소설 곳곳에서 흔히 인간사회가 정한 여러 규율을 직간접적으로 들먹이며 인간이 보았을때 슈텐도지의 행동이 어떤지는 대충 감이 오게끔 유도합니다. 반대로 슈텐도지는 인간에서 오니가 된 경우도 아니고, 태생부터가 순수하게 요괴로서 태어난 존재이다 보니 인간의 관념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태생부터 인간과 완전히 다른 슈텐도지는 인간의 기준에 따를 그 어떠한 이유가 없으며, 남이 어떻게 되던 간에 자기자신의 쾌락을 위해 살아간다는 느낌이 진하게 풍깁니다. ‘아아, 저 밝은 미소가 죽어있는 자신의 가족을 봤을 때 어떻게 일그러질까..’(2회, 5쪽) /‘..다른 사람의 피 냄새를 맡은 것 하나만으로도 기겁하며 돌아보는 모습이 퍽 귀여워 빙그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6회, 2쪽) / ‘시뻘건 피를 흘리며 쏟아지는 내장을 작은 두 손으로 막아보려 하는 모습이 보고 싶기는 하다.’(7회, 12쪽). 이렇듯 인간이 정한 도덕, 윤리 그리고 상식은 오니인 슈텐도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는 종족부터가 달라 사고방식도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답게 고대부터 서로 뭉쳐 살아왔기에, 이룬 공동체가 와해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죄와 그에 따른 벌이라는 기본적인 지침부터 시작하여,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정하자는 주장에 사람들은 그들의 안위를 위해 반쯤 암묵적으로 동의했습니다. 그 약속은 정해진 이름없이 현재에 이르러 도덕, 윤리, 법 등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이는 인류사의 기준이 되었고, 더 나아가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었습니다. 규율을 어기면 나쁜 사람, 질서를 지키는 사람은 착한 사람 이라는 흑백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이러한 사회구조는 아직까지 유지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자유라는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개념을 들먹이며 누린다고 한다면, 자유는 과연 선에 속할까요 악에 속할까요? 과연 무엇을 해야 제대로된 자유를 누린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전적으로 의미가 명시되어 있더라도 자유라는 개념은 수많은 사람들이 현재도 활발하게 토론하는 주제중 하나입니다. 약속이란 테두리 안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지속할때에만 허락되는 권리?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오롯이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의 총칭? 천명의 사람이 있으면 천개의 해석이 존재한다고 말하듯, 혹자는 그것이 극단적 이기주의의 산물이라 욕하고, 자유는 사실 삶 그자체라 숨을 쉴 권리가 자유와 동일하다 믿는다거나, 아니면 그 누구도 내뱉지 않았던 궤변을 늘어 놓으며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자유라고 주장합니다. 인간이 확실히 정의를 내리지 못해서 그렇지, 사실 정답이 있을지도 모르는 한개의 개념만으로도 사람들이 입에 거품물고 싸우는데, 하물며 다른 것이라고 별로 다르지는 않을겁니다. 이런식으로 생각하다간 끝도 없을테니까요. 그걸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개념의 정의와 해석은 개개인에게 맡겨지고, 다수의 사람들의 지지를 받은 주장은 진리가 되어 사회에 녹아드는 식으로. 인간은 이런식으로 의견의 대립으로 인한 여러 충돌을 예방해 왔습니다. 글이 길었는데,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왜 이렇게까지 소설 내용과 관계없는 내용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는가 생각이 드실겁니다. 왜인가하면, 상처가 나면 아프다라는 한낱 짐승도 아는 기본 상식과 달리 저런식으로 규율과 같은 인간이 만든 상식은 어디까지나 인간으로만 이루어진 사회에서나 통용될 법한 논리기 때문입니다. 산에 조난당해서 야생동물이 자신한테 달려들때, 우리 신사답게 말로 해결하자고 해도 그게 씨알도 먹힐리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편이라 하더라도 저항하지 못하는 상대를 아무렇지 않게 짓밟고 죽이라고 하는 존재를 선하다 할 수 있는가?’(39회, 7쪽) 탄지로가 아무리 슈텐도지에게 무력한 상대방을 유린하는 것이 나쁜 일이라고, 그런 짓을 하는 이는 사악하다고 설파하려고 한들, 슈텐도지는 대체 무엇이 그리도 문제인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왜냐면 이야기 내내 슈텐도지가 말했듯, 슈텐도지는 남의 말을 들을 것도 없이 오니로서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별로, 아무긋도.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것 뿐이데이”(4회, 6쪽). “묵고 싶을 때 묵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마음이 가는 대로 사는 것. 그게 오니라는 요괴데이.”(23회, 7쪽). 이는 슈텐도지가 알면서도 탄지로의 말을 무시한다기 보다는, 종족의 차이에서 오는 간극 자체로 인한 일방적인 의사소통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되나? 짐승이랑 다를 게 읎는 것 같나? 당연하지. 오니는 인간이 아이니까.”(15회, 5쪽)./ “내가 인간을 말하는 거랑 니가 인간을 말하는 거랑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긋나?”(29회, 9쪽) 새가 짹짹 운다고 해서 인간이 새가 운 이유와 그 내용을 통역기가 없는 이상 이해할 수 있을리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들을 수는 있어도 탄지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슈텐도지가 제대로 이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인간의 잣대로 슈텐도지를 정의하고 설득하려는 탄지로는 자신이 상대방의 기준을 맞추기보다는 자신의 기준을 상대방이 맞춰야 한다는 치기어린 애새끼와 하등 다를게 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탄지로가 저럴때마다 뒷목을 잡고 싶어지긴 하지만, 이것은 각 독자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인간의 기준에서 합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남을 괴롭히는건 나쁘다고 교육받아 온만큼, 사회가 요구하는 모범적인 시민으로서 슈텐도지의 무자비한 행동들을 보면 저절로 눈살이 찌푸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작중에도 나왔듯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 상대를, 그것도 지금 죽일 기회를 놓치면 후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음에도 그를 용서하는 것 까지는 개개인에게 허락된 권리라고 칩시다. 그런데 관용과 자비라는 것들을 오니인 슈텐도지에게 반쯤 강요하는 탄지로는 과연 옳은 일을 하는 것일까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기준을 남발하는 것또한 월권 행위이며, 사회는 명백하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배척하라고 소명하고 있습니다. 남이 인간의 기준으로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막아 나쁜 사람이 되지 않게 노력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슈텐도지를 막고자 남의 행동─권리─을 되려 제한하려 드는 모순적인 행보를 보여줍니다. 슈텐도지는 탄지로 주장하듯 왜 자신이 하는 행동이 해서는 안되는 짓인지 이해하고픈 마음조차 없습니다. 탄지로는 슈텐도지의 악행들을 막는것이 선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정의에 눈이 멀어 슈텐도지의 일에 끼어드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슈텐도지는 그런 탄지로에게 계속해서 네 논리는 오니에게 있어서 궤변이나 다름없다고 계속해서 말해줍니다. 앞으로의 전개는 더 지켜봐야 겠지만, 지금 으로서는 탄지로가 오니인 슈텐도지를 계몽시키려 드는 것과 그걸 오니 입장에서 한없이 자비로운 처사로 탄지로가 하는 짓이 전부 무의미한 짓이라는 걸 무력의 행사 없이 일깨우려고 하는 것의 반복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슈텐도지는 일깨우기 보다는 그 입장에서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위에서도 언급했듯, 탄지로는 그것을 깨닫기엔 아주 오래 걸리거나, 어쩌면 아예 불가능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비록 보기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 둘의 사상적 대립─정정하자면 탄지로의 제멋대로인 행동을 슈텐도지가 나름의 방식으로 받아주는 과정─은 이 패러디를 읽을때 각 캐릭터의 행동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선 결코 가벼이 넘겨선 안되는 부분이라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여담으로 여기에 사족을 붙이자면, 이 소설을 읽다보면 많은 생각이 들게끔 만듭니다. 탄지로는 인간의 이해범주를 넘는 모든 것들이 자신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하고, 또 통제하에 놓여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오만함을 인물로 빚어낸 것만 같고. 반대로 슈텐도지는 남이 무어라 지껄이던 ‘산은 산, 물은 물 山是山 水是水’ 란 말처럼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연과 흡사한것만 같은 착각이 듭니다. 이를 작가님이 유도하신 거라면 정말 대단하고, 설령 유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런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것부터가 다른 패러디와는 궤를 달리하는 소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이 깊이가 없는 싸구려 양판소에 불과했다면 캐릭터간에 있는 대사와 그 대사를 뒷받침 해주는 이야기의 매끄러운 흐름또한 없었을 것이고, 이런 해석을 할 의지조차 만들어주지 않았을테니까요.

      무잔과 슈텐도지를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직간접적으로 비교하는 이유.

      → 윗 내용이 전체적인 소설의 흐름에 필수불가결적인 요소─인간과 요괴의 관점차와 그에 따른 마찰들─를 설명했다면, 이것은 그와는 달리 작중에서 계속 비교되는 오니 鬼 라는 개념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크로스오버물 답게 각자 다른 세계관의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묘사들이 작중 내내 자주 표현됩니다. 무잔은 인간이었다가 증오로 얼룩져 괴물이 된 경우고, 슈텐도지는 태어나기를 온전한 요괴로 태어난 것이라 인간에게는 공포의 대상인 오니로서의 첫 시작부터 그들은 똑같은 오니로 불리지만 엄연히 다른 존재라는 것이 계속해서 강조됩니다.

      이 둘을 가장 쉽고 빠르게 비교하는 단어는 아마 인간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무잔은 소시오패스, 슈텐도지는 싸이코패스 일 것 입니다. 두 단어 다 학문적으로는 많이 애매하지만 그걸 차치 하고서 설명하겠습니다. 무잔은 과거 인간 이었던 적이 있어서 악행을 저지를때 그 행동이 인간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잘 알고 있습니다. 협박 같은 것도 상대방을 잘 이해해야 효과적 이듯이, 무잔은 인간이 느끼기에 너무나도 끔찍해서 지양하려고 하는 짓들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알면서도 서슴지 않고 저지릅니다. 반면에 슈텐도지는 한평생 인간으로서 살아본적이 없기에 인간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합니다.─이는 위에서 언급했던 이유 탓이다─슈텐도지는 인간이 보기엔 잔혹한 짓을 하더라도 그 행위를 악의를 가지고 한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모기를 잡는 수준의 감흥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당연하고, 인간이 세운 규율을 모르니 따르지도 않는 슈텐도지는 때로는 선역으로, 때로는 악역도 될 수 있어 함부로 편가르기가 어려운 행보를 보여줍니다. 슈텐도지는 그저 자신의 흥미가 동하는 것을 찾아 돌아다니며 희노애락중 락을 최우선으로 드는 요괴 일뿐, 무잔처럼 계획을 짜고 필요 이상으로 악랄하게 굴지는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이 인간이란 피식자에 대한 두 존재의 성향 차이 라고 한다면, 이번은 조금 다릅니다. 슈텐도지가 오토기조시 라는 설화집에 나오는 존재인지 아닌지 잘 모르더라도,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는 신체능력, 요사스럽게 솟아오른 이마의 두 뿔, 혈색이 돌지 않는 창백한 피부. 일반인들은 십중팔구 슈텐도지를 오니라고 단정할 것 입니다. 하지만 슈텐도지는 작중 내내 귀멸의 칼날의 오니라는 녀석들과 자신을 뜻하는 오니는 다른 것이라고 확실하게 구분 짓습니다. “세간에서 오니라 불리니께 진짜 오니라도 된 기분이드나?”(2회, 3쪽) / “내랑 요괴 반열에도 몬드가는 찌끄레기랑 같은 취급하지 말그라”(5회, 2쪽) / “니 같은 잡귀가, 오니라고 불리는 게 복장이 터져가꼬 이라는 기다.”(5회, 11쪽) / “니가 아는 오니랑은 다르긴헌데, 오니는 맞데이.”(6회, 4쪽). 본래 요괴라고 불리우는 것들은 인간의 신앙심이 생명체로 변화한 것, 귀신이 악에 물든 것, 혹은 천재지변을 설명하고자 만들어낸 상상속 존재들이라고 합니다. 그 답게 야마타노오로치란 머리가 여덟개인 용을 아버지로 둔 슈텐도지는 태생부터가 인외로서 태어났습니다. 그렇기에 슈텐도지는 무잔을 비롯한 귀멸의 칼날에서 등장하는 짭오니들는 달리 혈통도 있고, 그에 걸맞는 힘도 있는 근본부터가 확실한 요괴로서 완성된 개체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잔은 부모 둘다 인간이며 태어나서도 오랫동안 병약한 인간으로서 살아온 전적이 있고, 후에 어쩌다보니 인간을 초월하는 힘을 얻게된 경우입니다. 소설 초반에 진짜배기 요괴이자 오니인 슈텐도지를 만난 유사오니 무잔은 슈텐도지와 맞닥뜨렸을때 제대로된 공격조차 하지 못했고, 슈텐도지는 적잖이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별것도 아닌게 오니랍시고 설쳐대는게 심기에 매우 불편했기 때문 입니다. 이는 마치 아이x맨 코스플레이를 했다고 나 자신이 토니 x타크와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철딱서니를 보는 어른들의 기분과 비슷했을 겁니다. 이뿐만 아니라 슈텐도지는 그만의 이유로 무잔의 피를 받아 마찬가지로 인간에서 오니가 된 캐릭터들도 노골적으로 싫어합니다. “풍류를 모르는 잡귀는, 오니도 싫어한다는 소리데이.”(10회, 9쪽). 탄지로가 훈련할 동안 유곽에서 머무르던 슈텐도지 근처로 나타난 무잔의 따까리를 피떡이 되게 만들면서 말한 내용입니다. 이는 단적으로 슈텐도지는 이미 무잔을 필두로한 오니들은 자신과 동족이라고 칭할 능력도 안된다고 판단했음을 보여줍니다. 슈텐도지는 탄지로를 따라다니며 관찰하는 것과는 별개로 짭오니들에게 진정한 오니는 무엇인지 차례로 교육해줍니다.

      작중의 인물들도 많이 헷갈려 하는 부분은 바로 무잔은 인간을 벌레 이하의 존재로 보고 경멸하는데 반해, 슈텐도지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는, 인간을 오니랑 동등하게 본다는 소리데이.”(24회, 16쪽). 슈텐도지나 무잔이나 똑같이 인간을 먹잇감으로 보지만, 그 외의 부문에선 오히려 슈텐도지가 인간에게 매우 관대한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식사라는 목적이 없다면 슈텐도지는 인간이 먼저 나서서 자신을 죽이려 들거나 크게 거슬리는 짓을 하지 않는 이상 먼저 건들이는 편은 아닙니다. 조건성 비선공몹에 가까운 행보를 보여주는 슈텐도지와 달리, 무잔은 별에 별 이유를 붙여가며 인간들을 죽이는데 몰두합니다. ‘진짜 오니라면 웃어야지. 어떤 상황에서라도 웃으며 즐겨야지 않겠나.’(29회, 1쪽). 슈텐은 작중 내내 오니라면 본래 흘러가는데로 살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던질 수 있고, 죽음이 무서워 후에 자신의 적수가 될지 모르는 이를 죽이지 않는 호쾌한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그렇기에 슈텐도지의 입장에서 무잔은 그저 오니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도 하는짓은 영 오니 답지도 않은 짭퉁에 불과하며, 죽음이 두려워─자신을 죽일만한 이들을 먼저 죽이고 다니는 등의─온갖 치졸한 짓은 다하고 다니는 겁없는 잡종이라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렇듯 슈텐도지와 무잔은 태생도, 행보도, 전개를 통해 유추 가능한 성격도 다릅니다. 그 둘에게 있어서 공통점이라 할만한건 사람들에게 인외의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인정받는다는 것 뿐이며, 그 외에는 그저 차이점 밖에 없는 캐릭터들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 또한 소설을 읽는데 눈여겨보면 좋은 점으로, 슈텐도지가 왜 이렇게 무잔과 그의 따가리들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구데기인가 명작인가.

      →패러디란 장르의 정의는 아주 다양합니다. 원작이란 것에서 캐릭터만 가져와 이야기를 전개할 수도 있고, 자신이 만든 오리지널 캐릭터를 타인이 만든 세계관에 집어넣어 재창작을 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캐릭터는 그대로 놔두되 자신에 입맛에 맞는 전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토록 패러디는 게임의 샌드박스처럼 참신한 소설을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선사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패러디는 원작에서 아주 약간만 수정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원작의 내용을 복붙해 놓고 캐릭터의 이름만 바꿔놓은 상태로 이것이 자신의 창작물이라고 하는 행위는, 2차 창작이 아니라 도용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인터넷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종이에다가 트레이싱 했다고 그 종이에 그려진 그림은 순전한 자신의 것이 아니란 소리입니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저작권법 이라는게 존재하는 것이고, 이것은 그림이나 영상매체 뿐만 아니라 오로지 글로만 이루어진 소설 내용도 포함됩니다. 원작을 복붙해서 올린다면 원작자는 화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만든 것들이 텍본이라는 불법적인 루트로 유포되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테니까요. 이러한 이유로, 패러디는 원작자의 허락을 맡거나, 그것이 불가능 할 경우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을 정도로 2차 창작자의 특색이 스며들어 있어야만 합법적인 패러디로 인정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때 이 소설은 순전히 탄지로라는 주인공급의 인물을 따라다니며 도움을 주는 조연 수준이 아니라, 슈텐도지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가지고 원작에는 없던 독창적인 줄거리와 사건들을 넣어 이 소설은 유사패러디가 아닌 2차 창작이라 불릴 수 있을 만큼의 자격이 있는 패러디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저작권법에 위배되지 않고, 원작과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니 합법적인 2차 창작인 이 소설은 명작일까요? 이것은 사람마다 평가가 갈릴만한 주제지만 저는 이 소설이 충분히 명작에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봅니다. 더욱 정확한 평가를 위해선 더 많은 내용이 필요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작가의 필력에 크게 모난 부분도 없고, 이것이 아무런 장점도 없이 한없이 가볍기 만한 패러디가 아님을 읽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명작의 기본 자격 세가지는 개연성 있는 전개와, 독자들이 내용을 곱씹고 분석할 정도로 충분한 분량, 그리고 독자들이 소설속 장면을 상상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세한 묘사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초반에 슈텐도지가 갑자기 탄지로를 관찰한다거나, 유곽에 1년간 머무른다던가 하는 일들은 어찌보면 급전개에 뜬금없는 행동이라고 생각이 들 수 도 있으나, 저는 그보단 내 마음 가는대로 행동한다는 오니답게 슈텐도지의 캐릭터성을 설명하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명작에 어울리는 분량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너무 짧게 써도 안되지만, 너무 많이 써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루해져서 하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마치 이 서평처럼요. 평균 용량 10kb에서 20kb 정도면 무리 없이 읽을만한 분량이라고 감히 추측함으로 이 소설은 이에 부합하고. 마지막으로 상황 묘사는 지금까지 숱한 패러디 소설을 써온 프로답게 읽자마자 슈텐도지가 어떤 광경을 보고 있을지 상상이 가능했습니다. 따라서 이 소설은 개연성 부분에서 약간 애매할 수 있으나 다른 두 부문을 따졌을때 충분히 명작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추천하는 대상은.

      →페그오의 슈텐도지를 좋아하거나 패러디라도 귀멸의 칼날이면 괜찮은 분들과, 고어한 묘사도 즐거이 버틸 수 있는 분. 그리고 관점의 차이로 인해 인물들 사이에서 보이는 특유의 간극(착각)을 다른 장르보다 선호하시는 분들께 한번 쯤 읽어보시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글이 길었습니다. 건필하세요 작가님! (그래서 다음화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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