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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격전진 21호 네르비 <장미 정원의 주인>
    돌격요정 추천 3/2014.05.10
    안녕하세요. 돌격요정입니다. 이번에 비평할 작품은 네르비님의 판타지 소설 <장미 정원의 주인>입니다. 지금까지 총 연재 편수는 76편. 작품 용량은 1234.96 Kbytes, 조회 수는 40392, 추천 1921, 선작은 741개인 소설이네요. 평에 앞서 이런 명제부터 던져보도록 하겠습니다.







    (판타지 문학이란 무엇인가?)


    판타지 문학이란 영국의 예술가 윌리엄 모리스를 시작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장르 문학입니다. 저희 나라에선 익히 환상 문학이라고 불리기도 하죠. 예로부터 주로 3류 문학 혹은 아동 문학으로 인식되던 이 장르는 J.R.R 톨킨이라는 대문호의 등장과 활약으로 인해 급변하게 됩니다. 보다 체계적인 세계관을 얻어, 청소년들에 속하던 독자층을 성인 수준까지 끌어 올리는데 성공한 것이죠.


    판타지에 관심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J.R.R 톨킨이 쓴 실마릴리온, 호빗, 반지의 제왕 등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판타지 문학의 교본으로 꼽히는 명작 중의 명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각적인 사유가 존재하지만,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현실 세계에서 벗어난 가상 세계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는 이유가 대표적이죠. 한 마디로 말해 판타지 소설이란 현실 세계의 속박을 가상 세계로 전가시켜 독자들을 만족시키는 것. 이렇게 정의 내리면 되겠습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그런 판타지 소설의 기원을 톨킨의 소설이 아닌 웨일즈 신화 중 하나인 ‘아더 왕의 전설.’ 로 꼽긴 하는데, 저 개인적으론 반대의 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현대 판타지 문학계에 끼친 영향은 톨킨의 세계관이 더 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뭐 우스갯소리지만 톨킨 사후에 그와 대등한 판타지 장르 문학가가 최소 2명 이상 나왔다면 현 노벨 문학상 수상 목록엔 환상 문학도 포함 되었을 것이다 란 소리가 있으니.........판타지 장르에 끼친 톨킨의 영향은 지대하다 못해 절대적이라 할 수 있겠죠? ^~^










    자! 그렇다면 한국의 판타지 문학의 시작은 언제부터 일까요?


    1998년. 황금 가지 출판사에서 발행한 이영도 작가님의 <드래곤라자> 에서부터 제대로 시작된다고 알고 계시면 되겠습니다. <드래곤 라자>가 출현하기 전까지 대한민국 대다수의 문학계 인사들은 판타지 문학은 ‘어린 아이들이나 읽는 3류 동화 소설.’ 이란 평을 내리고 있었지만, <드래곤라자>의 출현 이후, 그 인식이 많이 희석되었기 때문이죠.

    또한 <드래곤라자>에서부터 시작된 판타지 문학의 도화선은 소위 말하는 신세대 지식층들에게 그 열기가 전염되어, 한국형 판타지 시대의 서막을 알리게 됩니다. (그 혁명의 불꽃을 내던진 위대한 사이트가 있었으니, 라니안과 삼룡넷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지금은 조아라와 문피아가 그 유지를 이어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많은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요..........)


    <드래곤 라자>
    <퇴마록>
    <룬의 아이들>
    <가즈나이트>
    <지크>
    <아린 이야기>
    <체인지>
    <사이케델리아>
    <더 월드>



    자! 총 9가지의 작품들을 나열해보았습니다. 제가 이 작품들을 나열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이 작품들이 바로 지금까지의 한국 판타지 문학의 길을 제시한 선구자격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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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래곤 라자>: 톨킨의 세계관을 인용하여 전통 판타지의 길을 닦는데 성공. 가벼운 흥밋거리의 장르 문학의 질을 어른들도 읽고 생각할 수 있게끔 극상향 시켰으며, 판타지에 대한 정석적인 세계관을 많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퇴마록> 현세를 배경으로 한 소위 말하는 퓨전 소설의 가능성을 옅게나마 열어주었으며, 한국적인 판타지는 무엇인가를 고찰하였음. 장르 문학으론 드물게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한 엄청난 업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룬의 아이들> 어린 청소년들을 위한 지침 소설로서 이름을 알림. 장르 문학이 게임, 만화, 애니 등 다양한 산업에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으며, 소년소녀 성장물의 모토가 되는 소설 양식은 아직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가즈 나이트> 전투와 사건을 중시하는 대표적인 판타지 소설로서, 자극적이고 원초적이지만, 인간의 욕망을 잘 파고든 작품. 현재 잘 알려진 먼치킨이란 용어도 이 작품이 원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크> 영지물의 시초이자 아버지라고 불림. 한 때 유행하던 영지물 판타지에 지극히 많은 영향을 준 작품. 허나 작품성은.........

    <아린 이야기> 드래곤 유희물의 서막을 알리는 작품. 카르세아린이 먼저라는 말이 있겠지만 제 생각엔 드래곤 유희물을 대중적으로 알린 작품은 이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또한 그 동안 무겁고 진중하기만 해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판타지에 여성 독자를 끼게 만드는데 동참했습니다.

    <체인지> 익히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나, 과거 한국 장르 문학계에서 극히 드문 TS라는 소재를 사용한 작품입니다. 저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장르 문학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이케델리아> 장르 문학에 차원에서의 차원이동이라는 또 다른 명제를 제시해준 소설이자, 주제, 목적 섞기의 대가인 소설입니다. 이 소설로 인해 장르 문학의 문턱은 좁혀졌으며, 좀 더 대중적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나쁜 말일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론 양산형 판타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작품입니다.

    <더 월드> 한국 장르 문학계에 가상현실 게임이란 소재를 등장시킨 시초입니다. 필력은 그닥 좋진 않았지만.........게임 소설의 시초였던 그 업적은 인정받아야 마땅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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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설명한 9개의 작품들이 한국 장르 문학계를 이끈 대표적인 선구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묵향이니, 드래곤레이디니, SKT 혹은 이드가 없다고 태클 거시는 분들이 있으실 수 있으니, 다시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위 9개의 작품을 포함은 몇몇 작품들로 인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에서 제일 보수적이고 융통성 없기로 소문난 대한민국 문학계에 장르 문학이란 꽃을 활짝 피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들 이후로도 많은 환상 문학들이 등장해 장르 문학의 저변을 넓히게 되었고, 이후 한국 장르 문학계는 엄청난 황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 이면엔 대한민국을 흔든 심각한 경제 위기 IMF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출판사들의 몸부림이 있었다는 건 덤이지만 말이죠.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장르 문학 대여점 문화가 발달 되어 있는 나라였습니다. 이 대여점 문화로 인해 한국 판타지 문학은 영광과 나락의 길 두 가지를 동시에 걸었죠. 대여점 문화로 인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판타지 장르를 접할 수 있다는 대중성을 확보했다면, 또한 이 대여점 문화로 인해 판타지 문학의 질적 하락과 시장 감소로 쇠퇴기를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문학 평론가들은 그러한 면에서 봤을 때 대한민국의 대여점 문화야 말로 한국 장르 소설계를 망친 원흉 중 제일 큰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선진국들 중에서 제일 책 구매율이 적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판사들이 책을 내 벌어들이는 돈은 적을 수밖에 없었는데, 심각한 경제 위기인 IMF가 발생하고 나선 그 위기가 증폭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출판사들이 줄도산........한국 문학계는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허나! 왠 일? 출판사 황금가지에서 출판한 소설 <드래곤 라자>부터 시작해 가벼운 마음으로 출판했던 장르 문학들이 연이은 대박 행진을 벌어들이게 되는 겁니다. 더구나 보통의 책들은 한 권에서 세 권 정도로 끝나는데 비해 장르 문학은 최소 5편, 최대 20편 이상까지 부수를 찍어 낼 수 있는 사기적인 효율성까지 자랑했죠. 물론 독자들의 구입보단 대여점의 구입이 주로 이루어지는 방식이여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적었지만, 그래도 고정적인 수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어디입니까? 심각한 경제 위기에서요. 그래서 많은 출판사들은 바로 이 때 장르 문학 시장으로 뛰어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 동안 천대 받던 장르 문학이라는 것이 위기의 출판사들에겐 소위 말하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된 셈이죠.


    이로 인해 출판사들은 먹고 살기 위해, 미친 듯이 판타지에 관련된 책들을 찍어 낼 수 밖에 없었고, 대한민국은 전혀 생각지 못한 환상 문학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심각한 경제 위기로 인해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국민들에게 있어서, 판타지 문학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만드는 소중한 도피처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그런 전성기를 맞이했나 생각됩니다.)


    하지만 양날의 검, 혹은 빛과 어둠이란 말이 있듯, 대여점과 출판사들의 활약으로 승승장구하던 판타지 문학계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으니, 그 건 바로 옅어진 작가 풀 현상 때문이었습니다. 과거 출판사들은 하이텔이라던지, 라니안, 삼룡넷, 세월이 지나 유조아나 문피아 등등에서 작가들을 손쉽게 수급. 바로 작품들을 수급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훌륭한 작가의 숫자는 감소하고, 이전에 비해 떨어지는 작품들만이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옅어진 작가 풀 현상으로 인해 훌륭한 작품을 쓰는 작가의 수는 한정되어 있고, 뛰어난 실력의 신인 작가 숫자도 줄어들었지만 출판사의 숫자는 도리어 많아졌으니 그 결과는........스타 작가를 모시기 위한 출판사들의 소리 없는 전쟁. 그리고 저희들이 지금까지 까고 까도 끝이 없는 양산 판타지 문학의 등장이었습니다.


    양산 판타지. 짧게 줄이자면 양판물. 흥미와 중독석을 최우선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문학은 지정된 세계관과 스토리로 독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으로 아무리 아마추어일 지어도 독자들에게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문학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런 문학을 중점적으로 찍어 던지기 시작하는 출판사들로 인해 한국 판타지 문학계는 양산형 판타지들의 홍수로 뒤덮이게 됩니다.









    자! 이 것으로 과거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제가 왜 비평 글에서 이런 얘기를 꺼냈을까요? 그건 바로 네르비님이 쓰신 판타지 소설 <장미 정원의 주인>은 이 판타지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기 판타지는 말 그대로 장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성을 인정받기 위해 일어난 소설들. 또한 대중들에게 생소한 판타지란 문학에 대해 심도 있게 알려주고 설명해주는 지침서와 같은 소설들이 대다수였고, 지금 현재 네르비님의 소설도 그와 같은 맥락의 느낌이 다분히 드는 소설입니다. (그 이유는 뒤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과거를 봤으니 이제 현재를 보도록 할까요? 연이은 양판물의 출현과 이에 대한 독자들의 실망과 유실. 그리고 떨어지는 작품성에 대한 비평가들의 비난과, 장르 문학의 문학적인 평가 절하. 마지막으로 과거에 비해 퇴보되는 작품성까지. 현재 장르 문학계는 그야 말로 과도기 중에 과도기, 침체기 중에 침체기, 그리고 몰락기 중에 몰락기에 빠져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저 개인적으론 한국 장르 문학계가 쇠퇴한 이유를 굳이 양산 판타지의 출현 탓 뿐 만이라곤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일 심각한 이유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바로 새로운 카타르시스의 욕망을 채워줄 경쟁자들의 출현이라고 봅니다.







    <Cultural diversity>







    좀 어려운 말인가요? 쫄지 마세요. 알고 보면 쉬운 영어 용어입니다. ^~^
    한국말로는 문화의 다양화, 혹은 다양성이라 불리는 말이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시대는 급격하게 변해왔습니다. 그와 동시에 인간의 욕망을 풀 매개체들도 무수히 많아졌지요. 예전엔 그 매개체가 TV와 만화책, 그리고 장르 문학과 오락실이라고 한다면, 이젠 컴퓨터 게임, 온라인 게임, 개인 방송, 채팅, 애니메이션, 웹툰, 영화 등 그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난 셈입니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도전자들의 등장으로 인해 장르 문학의 밥줄은 위태위태하게 변했습니다. 저희 같은 사용자들 입장에선 문화의 콘텐츠가 많아지는 것은 환호해야 할 소식이나, 제작자들 입장에선 마른 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소리겠죠. 자신의 밥그릇을 위협하는 못된 새깽이들의 등장일테니까요.


    아무튼 그로 인해 장르 문학은 심각한 쇠퇴기를 맞이하게 되어 버리고, 이는 아마추어 소설 연재 사이트이자, 판타지 소설 작가의 대표적인 등용문인 조아라 역시 마찬 가지였습니다.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판타지 문학의 지반이 으리으리하게 흔들리게 되면서, 그 규모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게 현실이 되었으니까요.


    그럼 여기서 되묻도록 할까요?


    그렇다면 판타지 문학은 이대로 끝인가요?


    아닙니다. 동물은 환경이 변하면 그 환경에 맞춰 적응하려고 노력합니다. 현재 판타지 문학 역시 그런 시기를 맞이하고 있죠. 어떻게 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거든요. 2000년대 초반까지 판타지 문학은 작품성을 최우선으로 봤다면 2000년대 중반은 독자를 붙들게 만드는 중독성을 우선으로, 그리고 현대는 과거의 고리타분함을 깨는 독창성을 보고 있는 게 현재 대한민국 판타지 문학의 현실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판타지 문학도 다르게 변한다.’ 라는 겁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쯤에서 본격적으로 비평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왜 이런 사설을 길게 늘어놓은 걸까요? 그건 바로 <장미 정원의 주인> 이 가진 문제점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 과거 판타지 문학은 작품성을 위주로 한 소설로 갔다면 중반기 판타지 문학은 중독성을, 마지막으로 현대 판타지 문학은 독창성과 신선함을 최우선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장미 정원의 주인>은 과거, 중대, 현대, 과언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요? 안타깝게도 첫 번 째입니다. 작품성을 보고 달리고 있죠. 칭찬 감사하다고요? 아뇨. 칭찬 아닙니다. 이건........뒤집어 보면 네르비님의 소설은 유행이 까마득하게 지난 멈춰버린 소설이란 비난과도 같습니다.


    요즘 조아라에서 연재되고 있는 상당수의 소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장미 정원의 주인> 같은 플롯의 전개의 필체의 소설을 찾아보기는 상당히 드뭅니다. 거의 대다수가 우직한 작품성보단 신선한 독창성, 혹은 시대에 조금 뒤떨어질지 몰라도 아직까지 쓸 만한 중독성을 무기로 열심히 달려 나가고 있죠. 그리고 그 작품들은 다양한 향과 맛을 독자들에게 뽐내며 자신들을 읽어달라고 유혹합니다. 마치 벌을 유혹하는 꽃처럼요..........


    네르비님의 판타지 소설 <장미 정원의 주인>은 과연 어떤 향일까요? 그리고 어떤 맛일까요? 장미향 같이 달콤한 향. 포도주처럼 달콤한 맛이라고 기대하셨다면 오산입니다. 제가 읽어본 <장미 정원의 주인>은 은은한 풀잎 향. 그리고 담백한 보리차와 같았습니다.



    혹시 MSG라고 아십니까?
    한국 용어로 말하자면 합성 조미료죠.
    과거엔 인체에 해롭다고 규제받고 있던 것이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조미료 중 하나입니다.
    왜냐고요? 이 걸 쓰면 음식이 더욱 맛있어지니까요.



    음식을 건강으로 먹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확신하건데 맛으로 먹는 사람이 더욱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판타지 소설 <장미 정원의 주인>을 맛으로 비유했을 땐, 옅은 된장국. 딱 그 정도의 맛입니다.
    그리고 요즘 신세대들은 그런 된장국보단 바삭바삭한 치킨이나 치즈가 듬뿍 들이건 피자를 더욱 좋아하죠.
    제가 지금 뭔 말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후후후. 알기 쉽게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현대 판타지 문학은 독창성과 신선함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 독창성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은? 여러 방법들이 존재하지만 그 중 제일 쉬운 것을 말하자면 누구도 생각지 못한 기발한 소재의 세계관, 그리고 매력 있는 캐릭터들의 등장. 일본어로 말하자면 바로 ‘모에’ 라는 장치를 의미합니다.

    누군가 자게에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었죠. 베스트 소설에 오르기 위해선

    ‘나나나난........따딱히.......널 위위해........도시락 싼 게 아니.....거든으으은........흥!’

    거리는 여주만 넣으면 된다고요. 우스운 말이지만 이 부분은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



    츤데레, 쿨데레, 얀데레. 로리, 하렘, 역하렘,


    이건 제가 싫어하는 말들인데, 모두가 일본 문화에서 파생된 단어들입니다. 그리고 요즘 장르 문학계에서 HOT 하게 뜨고 있는 키워드들이죠. 문학을 전공한 제 입장에서 볼 때 이런 장치들은 그다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장치임이 분명하나, 요즘 신세대들 사이에선 상당한 이슈가 되는 장치임은 확실하다고 생각됩니다.



    아까 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선호하게 되는 판타지 문학도 다르게 변한다고 말했었죠?




    현대 판타지 장르 문학은 말 그대로 문화의 다양성이란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여러 방책들을 연구하고 개발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방편 중 하나가 바로 요즘 신세대들에게 유행하고 있는 일본 문화에서 찾을 수 있었지요. 그리고 그 증거는 조아라에 일부 자리를 차지한 패러디 문학의 급상승입니다.


    옛날 판타지 문학은 마치 한 편의 서사시처럼 무언가를 자세하게 서술하고 설명하며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면, 현 판타지 문학은 보다 특이한 세계관을 보여주어 흥미를 증폭시키고, 매력 있는 캐릭터로 독자들을 붙잡은 다음, 연이은 사건 사고들의 등장으로 그들을 만족시키는 소위 말하는 Animation 기법을 즐겨 사용합니다.


    과거 판타지 문학은 무언가를 설명하며 독자들을 납득시키려고 노력을 해왔다면 현재 문학은 전에 비해 다양하고 넓어진 독자들의 상상력을 믿고 빠르게 글을 전개하며 캐릭터 성을 확립하기에 주력한다는 소리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판타지 소설 <장미 정원의 주인>은 ? 옛날 썼던 판타지의 양식과 방법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지 않나 그렇게 보여 집니다. 물론 그 옛날 방식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문학에서 옛 방식이 현 방식보다 나은 사례는 지극히도 많이 있지요. 허나 장르 문학은 다르다고 봅니다. 장르 문학만은 우직하게 옛 길을 고집해 걸어 나가기보단, 보다 짧은 지름길을 연구하고 찾아가는 게 더 낫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죠.

    빙빙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장미 정원의 주인>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특성이 지극히도 평범하면서 사실적이고, 또한 입체적이란 소리겠습니다. 물론 그건 나쁜 말은 아니지만........멀쩡한 놈보단 정신 이상자를 선호하는 현 장르 문학의 현실에선 그다지.......좋은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소설의 구성원칙 중 유명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기승전결.
    조금 길게 풀자면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상세하게 풀어보자면

    [발단] 소설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단계.
    [전개] 일어난 사건이 갈등을 일으키며 진행되는 단계.
    [위기] 전개되던 사건이 무르익어 폭발하기 직전의 긴장상태.
    [절정] 클라이막스라고도 하며 사건이 폭발한 단계.
    [결말] 폭발 후 그 사건이 마무리되는 단계.


    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장미 정원의 주인>은 이 기승전결 표현이 탁월한 소설입니다. 로엔젤라에서 카르티아, 그리고 중부 대륙까지, 너무도 완벽하게 기승전결을 이어나가고 있죠. 그런데요. 웃긴 사실이 아나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장르 소설 중 이 기승전결을 완벽히 지키는 작품이 과연 몇 개나 존재할까요?
    어처구니없게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은 있을지 언정 발단은 찾아보기 힘들죠. 물론 처음엔 발단을 그려 넣겠지만, 글을 연재하면 할수록 사건 내에서 발단은 찾아보기 힘든 게 현 장르 문학의 현실입니다. 왜냐고요? 뻔 하잖아요. 장르 소설은 대부분이 장편 소설입니다. 그리고 이 기승전결 원칙을 풀기엔 너무도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이 많으며, 한 챕터마다 이런 원칙을 넣기엔 작품이 어지럽고 루즈해지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좀 인기 있는 작품들은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후에 바로 -전개- 위기- 절정- 결말 후에 상황을 추스르고자 전개-전개-전개 후에 느닷없이 위기- 절정- 결말. 이런 식으로 불규칙하게 갑니다. 글의 재미를 위해서죠.













    또 한 가지 더! 비평 용어 중 ‘장르의 세부적 갈림길’ 이란 용어가 있습니다.
    이 용어는 말 그대로 한 장르의 문학 안에도 여러 갈래의 갈림길이 있다는 소리입니다.
    판타지 소설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판타지 문학을 보려고 살펴보면 그 안엔 TS, 로맨스 판타지, 영지물, 갱판물, 정통물 등등 다양한 주제와 목적의식을 가진 소설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독자들은 자신에 맞는 기호의 작품을 선택해 읽게 되고 응원하게 되죠. 그런 면에서 볼 때 최고의 작품은 이런 갈림길에서 자유로운 그런 작품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그런 특징을 가지면 되겠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에 도달하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보다 다양한 콘텐츠를 한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넣을 수 있는 능력이 되는가?
    혹은 오직 하나만의 콘텐츠를 극도로 갈고 닦아 그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안타깝게도 <장미 정원의 주인>은 이 두 가지 범주에 전혀 들지 못하는 그런 소설입니다.
    로판이라고 하기엔 러브 라인이 너무도 희박하고, 전통 판타지라고 보기엔 여성향의 냄새가 조금 풍기며, 밝다고 하기엔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이도저도 아닌 노선을 걷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또한 지니고 있는 콘테츠 역시 형편없이 적어 많은 독자들을 포용하기 힘들며, 유일하게 가진 무기마저도 날카롭게 벼리지 못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희 동네에 두 개의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습니다. 하나는 20년 전통의 빵집이고 또 하나는 요즘 생긴 베스킨 라베스 31이라는 전문 아이스크림 가게입니다 20년 전통의 빵집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은 바닐라맛 아이스크림. 초코맛 아이스크림. 단 두 가지뿐입니다. 그리고 베스킨라베스 31은 레인보우 샤베트 월드 클라스 초콜렛, 민트 초코칩, 쿠키앤 크림, 카라멜 초코 크런치, 슈팅 스타 등 그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가 되죠.

    사람들은 과연 어느 아이스크림 가게를 가겠습니까?

    물론 전통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동네 빵집에 가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입을 베어 물며 과거의 향수에 빠지겠지만,
    또한 어떤 이들은 보다 많은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가진 가게로 가 다양한 맛의 아이스크림을 기호대로 맛보기도 하겠죠.

    보다 다양한 맛을 구비해 독자들에게 여러 맛을 맛보게 해주는 것이야 말로 소설의 독창성이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네르비님이 쓰신 <장미 정원의 주인>은 작품성은 좋을지 언 정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자극적인 맛이 전혀 없었습니다.


    분명 이런 글을 남기면 이렇게 반문하는 분들도 있으실 것이라 사견됩니다.


    ‘소설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작품성 아닌가요?’


    호호호. 맞습니다. 소설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작품성이죠. 그런데요. 간과하고 계신 게 있으십니다. 장르 문학은 일반 문학과도 같은 예술성을 추구하는 그런 소설이 아닙니다. 순전히 재미와 흥미를 가져오는 철저한 오락거리라고 할 수 있죠. 뭐 현 추세가 바로 그렇다는 겁니다. (물론 간혹 작품성과 중독성, 독창성 모두를 잡는 괴수 같은 장르 소설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은 못하겠습니다만 그 수는 너무도 적죠.)

    그렇기 때문에 <장미 정원의 주인> 같은 경우는 장르 소설에서 중요한 오락거리가 결핍되어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 더. 필체마저도 무척이나 딱딱하고 규칙되어 있습니다. 국문학을 정공한, 혹은 옛 소설을 중시하는 작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현상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현대 판타지에선 독이 되면 독이 되었지, 결코 이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 사견됩니다.

    <장미 정원의 주인>은 복선과 반전들이 은밀하게 나열되어 있는, 그리고 그 회수 능력이 뛰어난 수작 중 하나입니다만,
    단 점이 존재합니다.


    그건 바로 읽게 되면 눈과 정신이 피로해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시간 나면 읽을 순 있어도, 시간을 소비해서 읽을 순 없는 마음을 들게 합니다. 그렇게 된 까닭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작가님의 성향 탓이 매우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과거 판타지 문학은 일반인들에겐 전혀 생소한 문학임이 분명해 이렇게 나열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 독자들을 이해하는 플롯이었습니다만 지금은 다릅니다. 요즘 신세대 녀석들은 어느 정도의 설명만으로도 납득 하고 이해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죠. 저와 네르비님 같이 기생 세대 사람들과 요즘 신세대들의 차이점은 바로 그러한 부분이다 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기생 세대 독자는 정해진 틀에 맞춰, 보다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사건 전개를 가진 소설을 선호하는 반면에 신세대 독자들은 비논리적이지만 화려하고, 자신의 카타르시스를 충족시킬 만한 그런 소설을 선호하고 있지 않나요?


    그런 면에서 볼 때 네르비님의 소설은 과연 신세대 독자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력을 가진 소설인가 묻고 싶습니다. 20대 초반 혹은 10대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이 조아라 인구의 60%를 차지하는데 그 중 얼마나 끌어안으실 수 있겠습니까?


    훌륭한 작품을 쓰려면 자기 자신을 갈고 닦아 발전하면 되겠지만, 인기 있는 작품을 쓰려면 주변을 꼼꼼히 살펴봐 현 유행에 맞는 흐름을 따라가야 된다고 저 개인적으론 생각합니다.


    늘 서서 걷는 풍경과 휠체어를 타고 보는 풍경을 비교해보세요.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
    저나 네르비님 같은 세대 사람들은 서서 세상을 보고 있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은 저희보다 낮은 키에서 세상을 보고 있을 겁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으시다면 눈높이를, 그리고 생각을 조금 낮춰보는 건 어떠신지요?
    문학은 보편적인 것이나 장르 문학은 상대적인 것이다. 딱 이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글의 템포에 대해서도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의뢰 해주셨을 때 고민거리 중 하나가 바로 느리게 가는 듯 한 템포라고 하셨죠?
    저는 이 소설의 템포는 결코 느린 편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네르비님의 집필의 스타일 상,
    빠름에도 불구하고 느리게 보여 지는 겁니다. 독자의 상상력에 맡겨도 될 부분을 너무도 세세하고 자세하게 적어내리고 계시거든요.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 맡겨야 하는 그런 부분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또한 제가 이 작품을 3차례 연독하면서 문뜩 느낀 사실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작가는 요즘 유행하는 <로맨스 판타지>을 이성으로 외치고 있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판타지>를 감성으로 써내려가고 있다. 라는 느낌을요.

    글을 쓰며 고민하는 건 좋습니다. 허나 그 고민으로 인해 작품의 방향성이 흐트러지는 건 최악 중에 최악이라고 생각됩니다. 뭐 하러 그런 고민을 하시나요? 네르비님은 ‘나는 소설로 꼭 성공할 거야! 그래서 스타 작가가 되고 말거야!’ 라는 필사의 각오로 소설을 집필하는 어린 얘가 아니잖아요. 소설의 무게를 좀 더 굳건 히 잡아주셨으면 합니다.




    <장미 정원의 주인>은 분명 좋은 작품이 맞습니다. 다만 가볍게 읽기엔 조금 부적절한 소설입니다. 몰입해서 읽게 된다면 상당한 재미를 느끼게 되겠지만, 가벼운 맘으로 읽으려고 한다면 차라리 다른 소설을 읽으라고 조언 내려드리고 싶습니다.
    길잡이, 장미, 인어, 마도사, 인도자, 그리고 세계관등. 여러 차례 읽으며 과거 읽었던 판타지의 향수에 사로잡힐 수 있었지만.......요즘 세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조금 의문이군요. 아무튼 이만 총총히 사라지도록 하겠습니다. 이 모자란 비평 글이 네르비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추신- 분명 <장미 정원의 주인>은 좋은 소설임이 분명하나, 대세적으로 봤을 땐........음. 아무리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지만, 네르비님의 차례가 올 때까지 버티실 수 있는 지는 의문입니다.




    추신- 저 개인적으로 한국 장르계가 살아나기 위해선 웹툰과의 연계가 필수라고 봅니다. 소설가가 생각한 세계를 만화가가 그리는 게 보편화된 아마추어 문학계. 그 날이 꼭 왔으면 좋겠네요.





    추신- 꼼꼼한 퇴고와 스토리텔링의 흔적이 유난히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한 편으론 존경스럽네요.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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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글 다른 세계에서 시작하는 하나의 리벤지를 연재하게된 yesir세닉입니다 yesir세닉 201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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