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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파 님의 [천지인]
    덕마늬 추천 0/2013.05.26
    이 글은 원래는 서평란에 올려야 하는 글입니다만, 서평란이 거의 이벤트방으로 변한 듯 해서 이곳에 올립니다.
    이 글에는 다량의 스포가 함유되어 있으므로 가급적이면 소설을 다 읽으신 분만 이 감상문을 읽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비평문이 아니다. 나는 어떤 이의 글을 비평할만큼의 날카로운 시각을 갖지도 못했을 뿐더러 단점이 드러나게 보이는 글을 계속 읽을 만큼의 인내심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글은 정성이 가득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고 참으로 재미있어서 읽는 동안 내내 심장이 두근거렸던, 그래서 그런 소설을 읽게 해주신 분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은 마음에 쓰는 감상문이다.

    소설 [천지인]은 김은파님이 쓰신 역사소설이다.
    숙종시대, 그 유명한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이야기가 아닌 숙종과 그의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숙종은 조선의 여러 왕들 중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왕의 한 명이다. 그 유명세가 업적으로 인한 것이었다면 좋았으련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치정사건으로 이름을 날렸다. 물론 숙종이 왕으로서 자질이 없는 인물이었다면 그렇게 오랜 세월을 왕의 자리에 앉아 사사건건 명분과 법도를 내세우며 ‘아니되옵니다’를 주창하는 대소관료들을 상대하며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말초적인 것에 더 쏠리는 법이라. 숙종의 치세에 있었던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이야기에, 그 드라마틱한 사건에 이런저런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숙종은 여인의 치마폭에 휩싸여 마음이 흔들린 그다지 줏대 없는 왕처럼 비춰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지금껏 만들어졌던 장희빈과 인현왕후를 주제로 한 수많은 드라마에서도 숙종은 남자주인공이면서도 별로 존재감이 없는 그런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저 왕이라는 게 중요할 따름이다.

    그러나 실제 숙종이 그런 인물이었다면 그 치열했던 붕당정치의 한복판, 왕권을 견제하는 게 중요한 소임이라 여겼던 사대부들과의 힘겨루기에서 자신의 뜻을 과감히 관철시켜 일개 후궁을 국모의 자리에 올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세자의 모후가 된 여인을 국모의 자리에서 빈으로 끌어내린 것도 모자라 끝내 사약을 내려 사사하는 게 가능했을까. 즉,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 실제의 모습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소설 ‘천지인’은 그런 숙종의 실제 모습에 대해서 상상해볼 수 있는 좋은 글이다. 전제왕정이라지만 왕권이 참으로 약했던 나라. 그런 나라의 왕으로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조강지처와 한때 사랑했던 여인들까지 이용해 서인세력과 남인세력을 재배치했던 철혈의 지배자.

    하지만 그런 왕도 자식들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 각별했고 그래서 안타까움이 일기도 했다. 사사된 모후(장희빈)의 존재와 왕세자로서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위질을 앓고 있어 너무나 위태로운 위치에 있는 동궁(세자). 그리고 같은 왕의 핏줄을 타고 났지만 출생의 비밀이 있는데다 역시 모후의 비천한 출신(?)으로 인해 반대편(소론) 신료들에게 제대로 왕자 대접도 받지 못하는 연잉군(훗날 영조).
    아비로서, 왕으로서 숙종은 반대편에서 서로 상대를 죽여야만 살 수 있는 두 아들을 어떤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했을까.

    이 소설은 그 연잉군에게 출생의 비밀이 있다고 상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참으로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하여 연잉군에게 쌍둥이 여동생이 있다는 걸 설정하여 그렇잖아도 불안한 연잉군의 위치를 더 위태롭게 만든다. 남녀유별이라는 유교사상에 찌들어있는 조선시대에는 엄마의 뱃속에 남녀가 벌거벗고 함께 들어있다는 것 자체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민들은 다 같은 귀한 자식들이니 상관없었지만 법도와 체통을 따지는 양반들은 남녀쌍둥이가 태어나면 딸 아이를 몰래 뒤주에 담아 버리거나 혹은 멀리 보내거나 간혹 죽이기도 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그러니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미 정적이 있는 연잉군에게 쌍둥이 여동생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 결코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이 극진한 숙종이니 아무리 딸의 존재가 아들의 목숨을 위협한다 한들 죽일 수는 없었으며, 그 딸을 연잉군의 편에 있는 노론의 한 세도가에 보내 그 집의 서녀로 자라게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 소설은 최고의 극적 긴장감을 갖게 된다.
    짐작하겠지만 연잉군의 쌍둥이 여동생이 바로 이 소설의 여주인공이다. 이미 태어나 살아가고 있지만 존재해서는 안되며, 그 태생의 비밀이 절대로 알려져서는 안되는 그녀 이영.

    이 이영의 위치가 참으로 애매하다. 왕의 핏줄이지만 드러낼 수 없으니 고작 서녀로 키울 수밖에 없는데 자식에 대한 애틋한 왕의 마음을 알고 있으니 또한 조심스럽다. 그래서 이영은 좀 특이한 성장과정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성장배경이 그녀의 특이한 행동, 가령 노비가 되어 성균관 유생에게 대거리를 하는 등의 조선시대 여인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여러 행동들을 용납하게 만든다.

    비밀스러운 출생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외롭고 쓸쓸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이영은 그때 우연히 만나 잠깐 동안 마음을 기댔던 서명인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이 만남으로 인해 서명인은 삶이 기구하게 꼬이게 되는데, 이 서명인이 바로 이 소설의 남자주인공이다.

    서명인은 그 타고난 천재성 때문에 더 고난을 겪는다. 최고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가문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기에 어린 나이에도 혹독하다 싶을 만큼 철저하게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온 나라에 천재라고 이름을 떨치며 당대 최고 석학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을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인 명인은 그저 집이 그립고 가족이 보고 싶다. 그리고 우연한 이영과의 만남으로 숙종의 눈에 띄게 된 명인은 그 때문에 죽기까지 고초를 겪으며 결국 한번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서륜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이로 인한 숙종과 서륜의 애증관계가 또한 이 소설의 핵심을 이루는 한 축이다.

    숙종은 서륜의 재주와 성품이 참으로 마음에 들지만 그는 소론이며 동궁(훗날 경종)의 사람이다. 동궁을 생각하면 잘 된 일이지만 동궁은 몸이 약하고 지병(위질)이 있다. 그리고 왕의 자질은 동궁보다는 연잉군이 더 출중하다. 그러다보니 숙종은 어쩔 수 없이 연잉군에게 마음이 기운다. 그래서 숙종은 더 서륜의 날개를 꺾는다.

    이렇게 외롭고 위태로운 두 남녀가 서로 마음을 의지하고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물론 서륜은 소론이고 이영은 노론에 속해 있는데다 이영의 아비(숙종)가 서륜에게 행했던 심했던 일들 때문에 그 사랑의 과정이 순탄치는 않다. 게다가 그 당시 조선시대 소론과 노론 사이의 극에 달한 갈등 관계는 또 얼마나 피를 말리게 두 사람을 위험하게 하는지……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소설이기에 극중에서 나오는 언문의 비밀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 어쩌면 나의 상상력이 빈약해서 작가가 풀어내는 글자의 비밀이 머리 속에 잘 그려지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그 부분이 내내 아쉬웠다. 그리고 바둑 기보를 통해 암어를 전달하는 부분들도. 그런 것들은 차라리 영상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작가는 소개글에 언문의 비밀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사실 내내 소설을 읽으면서 그 부분에 대한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고 솔직히 말하고 싶다. 그보다는 그 당시 소론과 노론 사이의 목숨을 건 대결관계, 그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동궁과 연잉군, 그리고 서로 원수의 집안에 속해 있으면서도 운명처럼 끌리는 두 남녀의 목숨을 건 사랑,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며 자식들의 목숨과 왕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피 말리는 도박을 해야 했던 숙종의 심리가 인상 깊었다.

    이 소설이 쉽고 가볍게 볼 수 있는 글은 아니다. 숙종 시대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어야 하며 유교적 사고방식이 뼛속까지 배어있는 사대부들에 대한 약간의 이해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장희빈을 다룬 여러 편의 사극 혹은 소설을 통한 대략의 정보만 있어도 이 글은 정말 재미있게 볼 수 있으며 더불어 그 시대에 대한 상세한 지식까지 얻을 수 있는 글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3년 동안 준비해 썼다고 했는데 충분히 그 정성을 느낄 수 있었으며 종종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부디 이 작품이 드라마화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서륜이라는 인물을 눈으로 보고 싶다. 아마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더더욱 서륜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고 헤롱거리겠지만, 그래도 좋으니 이런 작품들이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또한 이 글을 책으로 소장해서 두고두고 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그러니까 작가님. 출판사에 투고라도 해보심이 어떠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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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글 다른 세계에서 시작하는 하나의 리벤지를 연재하게된 yesir세닉입니다 yesir세닉 201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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