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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남한산성을 보고 나서
      드래곤음양사 추천 0/2017.10.03
      남한산성을 보고 왔다.

      개요는 이렇다. 병자호란 와중 패색이 짙어지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최후의 농성을 준비하게 된다. 성밖으로는 적들의 군대가 몰려오는 가운데 성안에서는 주전파와 주화파가 갈려 다투기에 이르고, 창검의 기세가 겨울의 추위보다 매서운 때 사람들은 각자의 길 위에 서서 청을 맞는다.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개요에서 '각자의 길'이라는 단어를 꺼내들었는데, 이 영화를 굳이 한 단어로 축약하자면 그 중심을 꿰뚫을 만한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영화는 말 그대로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의 군대를 맞아 선택을 강요 받는 사람들의 입장을 다각도로 조명하여 보여주고 있다.

      가장 위에서부터는 인조 휘하의 예판과 이판으로부터 밑에서는 한 대장간의 민초까지,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어느 하나 버릴 인물없이 어우러져 주제의식에서 벗어남 없이 스토리를 형성한다. 대개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는 보는 사람의 감성에 호소하여 이야기의 진행과 주연이 맞는 사건의 흐름을 같이 하는 식인데, 그러면서 주연의 과거가 회상되거나 혹은 적절한 히로인 아니면 예상될 만한 위기를 겪거나 한다. 이 과정이 얼마나 밀도 있게 보는 사람을 주연의 기분에 빠져들게 했는가가 영화의 재미를 판단하는 척도겠다.

      반면 남한산성은 그렇지 않다. 대장장이와 그의 동생이 벼슬아치에게 분노하면서 풀어내는 이야기로 짐작되는 그들이 겪었을 시대의 고난은 그들에게 고난을 강요하는 주인공급 인물 예판을 통해 어느 쪽이 옳은 것인지 판단할 수 없게 한다.

      잘 만든 영화라고 했지만 단순히 여러 개의 돋보기를 사용하는데 그쳤다면 그것만으로 호평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백미는 예판과 이판의 대립이다. 주전파와 주화파의 대립은 단순한 파벌 싸움이 아니라 그들 각자가 믿는 가치의 대립으로까지 이어진다.

      많은 문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오컴의 면도날처럼 단순한 하나의 질문이 입장을 가르기에 더욱 명쾌할 것 같다.

      죽음보다 무의미한 삶이란 존재하는가?

      영화에서 많은 장면이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는 장면으로 할애된다. 이 할애 비중으로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한 의의는 임금 역시 최선의 선택 ㅡ 아들을 버려야 하지만 임금 이전 아비로서 그럴 수 없음에, 자신의 선택으로부터 발생한 이 막막한 상황을 중론을 통해 타개하라 강요받는 하나의 선택적 인간임을 말하는 것이겠고, 다른 하나의 의의는 감히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가꿔내기 위함이라 말하고 싶다.

      내 옆에 같이 보러 온 사람은 예판과 이판이 온몸을 던지듯 어느 길이 옳은 것인지 임금에게 소리 치는 그 장면에서, 반쯤 일어나서 손에 땀을 쥐고 있는데, 끝나고 나서 민폐였노라 넌지시 말하니 자신이 그랬는지도 기억을 못하더라.

      다른 잘 만든 점은 이 영화의 현실성이다.

      현실성이라 함은 고증이나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이 현실적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냐 하는 것이다. 그럴 듯한 감성으로 예상되는 통쾌함을 밀고 나가는 것 역시 재밌지만, 이병헌과 뭐시기 분이 이렇게 열심히 열연하고 있는데 거기에다 영 안 맞는 느낌의 조미료를 끼얹는다면 이상하지 않을까?

      조총수가 쑤시개를 사용하는 것에서부터 바로 옆에 방금 전까지 대화를 나누는데 포탄이 날아온다거나, 여과없이 눈구멍만 까마귀가 빼어먹어 전후임이 역력한 시체들의 모습 등,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콕 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얼마간 '일반적인' 감성에서 벗어나는 현실성이 이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했다. 그리고 그래서 영화에서 사용된 돋보기가 의미가 있었다.

      한편으로 마음에 걸리는 게 없는 건 아닌데, 하나는 주전파가 단순히 타도 상대가 아님을 말하는 영화의 설득력이다.

      하이라이트 부분까지 이르러선 수그러들었지만,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애국과 충성 등의 기치로 주전파의 입장을 현대인이 공감하기란 무척 난해하다. 특히 처음 예판이 뚜벅뚜벅 들어 걸어 들어와서 뭐라 할 땐 이게 무슨 지랄인가 했다.

      그 후로도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꽤 오랫동안 내 안에서 이상한 놈 취급이었는데, 말투가 따박따박 거리는 게 나는 좀 웃기더라고. 좀 더 카리스마 있어도 되지 않았나 싶다. 반대 쪽에 비교되어서 이병헌이 거진 정의의 용사쯤으로 부각되는 느낌?

      혹은 사건과 별도로 그 등장 인물 개인에게 조명을 좀더 맞추어 공감이 쉽게 만들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 내가 영화에 대해 뭔가 안다거나 하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여기까진 잘 모르겠네.

      하긴 이 정도면 충분한 조명인 것도 같다. 영화는 예판의 살인으로 시작하는데, 지나고 보면 그에 대해 생각할 거리가 꽤 많다. 영화의 처음과 끝을 통해 직접 '살기 위해' 죽음을 들이밀어야만 할 수도 있는 법이라고 강변하기도 하거니와, 그토록 충신이던 그가 임금까지 언급하기에 이르렀을 때엔 정말이지 '헉' 소리가 절로 났더랬다. 다 거짓이진 않겠지만, 어쩌면 그가 믿는 가치가 명예를 고수하는 것을 넘어서 다른 지평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갈 수 있지 않았나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반전이었으니까.

      다른 하나는 상투성을 완전히 지워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민초들이 엎드려 우는 장면에선 절로 의아해졌는데, 말고기와 가마니 챕터에서 민초가 그 발암 영감한테 던진 한 마디로 웃음 지었던 재미가 겹쳐져서 더욱 그러했다. 거기서 그 옆의 대장장이와 말숙이? 꼬마 여자애가 문답을 나누는 건 좀 오글거리는 전형성이었다.

      그리고 삼전도 삼배 씬도 말하자면 제 2의 하이라이트라 하겠는데, 국사 교과서를 통해 이미 결말을 스포 당한 우리를 여기까지 긴장감 있게 견인해온 것을 칭찬하고 싶으면서도, 이병헌이 울 때 난 별로 이입이 안 됐다.

      이 전형성에는 특히 발암 영감이 너무 전형적인 빌런으로 나온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다. 뭐 꼰대는 꼰대 나름의 꼰대적인 캐릭터성을 부각한 거라고 둘러 칠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마지막으로 남는 생각은 이렇다

      이병헌 저를 가지세요 제발

      연기 존나 잘해 넘 잘생겻서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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